[Work]이한우의 『논어』 강의

말을 잘한다는 건 뭘까. 너무 잘하면 무섭다. 그래서 듣기도 중요하다. 말하기-듣기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 쉽고 뚜렷하게 주장하는 책. 그리고 내가 디자인한 가장 두꺼운 책(1344쪽).

책의 디자인은 내지와 표지로…

독자는 표지를 먼저 보지만, 디자이너는 내지를 먼저 본다. 먼저 태어난 내지가 바깥으로 밀려나 굳은 것이 표지이기 때문이다. 내지의 디자인이 먼저다. 내지에 씨를 뿌려 숲을 이루면, 표지는 가지치기만 하면 된다. 표지만 번지르르한 책에서 속은 기분이 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내지를 디자인하려면 원고를 꼼꼼히 다 읽어야 할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편집자의 역할이다. 내 역할은 책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일이다. 글에도 결, 틀, 숨이 있다. 그것을 헤아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모두가 기승전결을 따진다면, 디자이너는 길이와 힘을 본다. 25%씩 4등분 한 것인지 2 : 3 : 4 : 1인지를 따진다. 

글을 살펴 책의 콘셉트를 잡는게 디자인의 팔할이다. 그런데 이 책의 콘셉트는 처음부터 매우 단순했다. “고전”이다. 천상의클래식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고, 내용도 “논어”다. 하지만 ‘고전’만으로는 부족하니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다. 그것도 어렵지 않았다. 논어는 진부하니 “새로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고전”이란 역설적 콘셉트가 나왔다.

내지 콘셉트는,

고전의 힘이다. 오래된 것은 풍화를 이겨낸 힘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논어는 풀이에 신경쓰느라 죄다 잘게 쪼갰다. 원테이크로 주욱 읽어 내려가는 경험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원문을 주욱 흘리는 레이아웃을 스케치했다. 일종의 지도죠. 조금 이해가 안 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읽어 내려가면 보이는 큰 그림이 있다. 고전의 깊은 맛을 연결과 흐름에서 찾고자 했다.

표지 콘셉트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말을 논해 사람을 알아본다[論語知人], 이것이 『논어』의 핵심이다."에서 시작했다. '아... 논어도 결국 대화였구나.' 이 한마디가 고리타분하던 공자를 이웃집 아저씨로 되살렸다. 이 책은 그렇게, 논어를 만만하게 보는 관점을 준다. 그렇게 나를 위한 책이 된다. 고전의 실용적 전환이랄까.

그런 생각으로 논어라는 글자를 써보니 한글보다는 한자가 낫겠다 싶었다. 論語의 핵심이 言이라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치 물리학의 원자나 언어학의 형태소처럼 더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가 言이었구나. 이게 논어를 읽어야할 이유구나.' 그 느낌을 담았다.

스케치는 강원도 홍천 여행 길 차 안에서 끼적거린 거다. 스케치는 환경과 기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왠지 느낌이 와서 미리 작은 수첩과 펜을 챙겼죠. 창밖의 단풍을 감상하다가 끼적거리고, 옆사람과 떠들다가 끼적거리기를 되풀이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어슬렁거렸다.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새롭지 않은 것이 있어야 한다. 증명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려면 혹여 실패하더라도 원금회수가 가능한 ‘보장’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즉 새로움과 안전함은 세트로 움직인다. 오랫동안 검증된 무언가를 믿고 까불거리는 게 새로움의 정체다. 얼마나 든든하고 또 얼마나 신나겠는가. 논어라는 고전, 이한우의 견고한 풀이가 디자이너에게 ‘새로울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